1. 한동안 연락이 잦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 줄 모른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그냥저냥 인사나 하고, 어떻게 하다보니 전화번호는 저장되어 있는 사이. 그렇지만 딱히 개인적인 이야길 나누는 것도 아닌, 아주 낯선 관계였다. 일 년에 한 번, 그러니까 상대방의 생일에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하나 보낼 일도 없는 그런 사이 말이다. 솔직히...
매일 밤, 당신의 목선을 타고 어깨로 흐르는 선을 떠올린다. 나의 손이 당신의 어깨 끝가에 닿기 전에 내게 입을 맞춰 주었으면 좋겠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순식간에 불어나 산더미가 된지 오래였다. 내가 함께 없을 때,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나요. 날 궁금해한 적이 있나요. 혹시 내 이름을 잊어버리진 않았나요. 내가 당신 이름을 되뇌이듯,...
1. "좋아합니다."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간만에 들어보는 낯간지러운 다섯 글자. 그런 말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내뱉은 주인공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고등학생이었다. 하던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아침마다 곧잘 마주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지금이야 일찍 일어날 일이 없으니 1층을 향하는 엘레베이터에 나란히 서있는 일도 사라졌지만 말이다. 당분간...
* 아카아시, 생일 축하해. 너무 아파서 글 못 올릴 것 같았는데 1년 내내 후회할 것 같아서 뭐라도 쓰고 싶었어. 너는 내 마음을 꼭 알아줘야 한다. 무슨 정신으로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축하해. 퇴근을 준비하는 아카아시의 손 끝이 부산스럽다. 붕 뜬 마음을 다잡듯 책상에 놓인 물건들을 간지런히 정리해둔다. 자리에서 일어나 잊은 물건은 없나 하고 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어지는 섹스는 매일 반복되어 왔다.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 하나마키는 적당한 크기로 썰린 스테이크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입에 맞아?" "네." 마츠카와는 좋은 사람이었다. 매일 저녁을 직접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금전적인 면에서 하나마키에게 들어가는 것들을 아까워하거나 생색내는 일도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언제...
아카아시는 왜 늘 극존칭을 쓰는가. 그것은 평범한 궁금증이었다. 아카아시를 처음 만났을 땐 아직 초면이기 때문에 그런 말투를 쓴다고 생각했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아직 친근감이 덜해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도 아닌 것 같았다. 존댓말을 듣는게 싫진 않아도 반말을 쓰지 못할 것은 없지 않나 싶었다. 어느 날 아카아시의 집에 놀러갔던 때, 쿠로...
쿠로는 맨날 그 편의점에 가는데, 비슷한 시각에 똑같은 담배만 사가서 아카아시도 기억하고 있는 손님 중에 하나고 어쩌다 하루 안 오면 오늘은 왜 안 오나 하고 가볍게 궁금해짐. 뭔가 초췌한 꼴로 올 때가 많아서 백수인가 생각하다가 내가 뭔 상관이냐 싶어져서 신경 끄고. 근데 어느 날은 쿠로가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났는데 자기 취직해서 기분 좋다고 하면서 우...
모든 것은 어느 주말 아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방에서 나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소파에 누워 있던 낯선 남자. 도둑인가 싶었지만 어쩐지 곤히 잠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어제 술을 진탕 마셨다가 필름이 끊겼나?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확인했을 때,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마츠카와?" "잇세이. 마츠카와 잇세이." 똑같은 외형에...
이 비가 그치면, 눅눅함도 사라지겠지. 제습기의 버튼을 누르는 쿠로오의 손가락은 어딘가 메말라 있다. 기계로부터 나오는 울림 소리가 방 안에 낮게 퍼져나갔다. 오늘은 잠을 자지 못했다. 두어 시간 정도는 눈을 감고 있었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일 뿐이었다. 침대 위에서 눈을 꿈뻑거릴 때만 해도 이번 주말엔 침구를 갈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금세 마음이 바뀌었...
─── 제1권 「毎日をもっとゆっくりと」 주말의 서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카아시는 베스트셀러들이 쌓여있는 매대를 슬쩍 훑어보며 그 곳을 지나쳤다. 공간이 넓어 그리 불편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이따금씩 치이는 가방 때문에 크로스백을 앞으로 당겨 서있어야 했다. 나즈막한 발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느린 보폭으로 진열대 앞을 서성인다. 딱히 사야할 책...
공을 넘겨주면서 친절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순간 마음이 덜컥 했을 때 난 알았어. 아, 내가 너를 좋아하는구나. 그걸 처음 깨달았던 날엔 실수가 잦았고, 너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평소의 너와 다르지 않았겠지만 난 이제 네 표정을 읽는데 능숙하거든. 보쿠토 상, 오늘 어디 안 좋으십니까. 그렇게 묻길래 그냥 아냐, 아냐 하...
"그 포켓치프는 왜 파란색이에요?" 원래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신경을 써본 적은 거의 없어서 그와 정반대인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관심을 갖는 것에 관심을 갖는 것도 요상하고 불필요한 일이다,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의 일부를 궁금해해도 그 이유까진 신경써보지 않았는데, 이번은 조금 달랐다. "그걸 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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